ESIT 프랑스 3대학 통번역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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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08-10 21:28 조회3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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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e 7 (쌀르 쎄뜨)란 불어로 <7호 교실>이라는 말로 ESIT의 입구에 있는 약 50평 크기의 제일 큰 교실이다. 2001년 별세한, 20여년 에지트 원장을 역임한 그의 이름을 붙여 Danica Seleskovitch Hall로 불리고 있다.
그 건물이 옛 NATO 본부여서 Salle 7는 기존 동시통역 부스 3개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 방은 특히 입학 초부터 졸업까지, 에지트의 통역학부 학장이 통역부 학생 100명 전체를 모아 놓고 통역을 강의했던 교실이다.
당시 학장은 Christopher Thiery라는 나보다 큰 프랑스인 교수로 영어와 불어의 Bilingual이었는데 2년동안 통역입문 과정부터 동시통역까지 가르치면서 날카로운 비평으로 악명높았다. 그 시간만 되면 모든 학생이 공포에 떨었다. 당시 모국어인 한국어를 인정받지 못하고 불어를 영어로 순차 통역하는 C-B 통역으로만 평가받아야 하는 별난 학생(Special-case student)이었던 나도 그 수업에 참석해 몇 달에 한 번쯤 통역 평가를 받았다. 학기말이 가까워 오면 ㄷ자 모양으로 배치된 책상들 중앙에 통역자 책상과 걸상을 놓아 거기에 앉혀 놓고 수강생 100명 환시리에 통역을 시켰기에 무대 공포증은 더 컸다. 졸업시험 한달 전 나를 지명해 중간 좌석에서 그가 읽어준 캐나다 연사의 불어 연설을 죽을 힘 다해 영어로 통역했더니 수강생들의 의견을 물은 후 “그냥 잘한 게 아니라 매우 잘했다. 귀하가 그렇게 발전할 줄은 몰랐다. 졸업시험 잘 쳐라”고 격려해 준 교실이다.
졸업시험날, 당일 합격자 발표를 한 후 티에리 학장은 나를 끌어 안으며 My colleague! 동업자여 축하한다고 외쳤다!
나는 1983년 6월 13일 동시통역 졸업시험 장소이기도 한 이 교실 맨 오른쪽 부스에 홀로 앉아 티에리 학장을 비롯한 파리의 내로라하는 4명의 현직통역사 시험관 앞에서 한영 동시 졸업시험 (제목: 전두환 대통령 아프리카 순방 출국성명)을 쳤고, 20점 만점에 18점을 받아 총 3개 시험 평균 16점으로 천신만고 끝에 졸업할 수 있었다. 기적같은 결과였다. 그날 밤 고향에서는 어머니가 “폭포수 밑에서 꺼지지 않는 촛불” 꿈을 꾸셨다고 했다.
2005년 6월, 세계통대협회(CIUTI) 총회 참석 차 파리에 갔을 때 첫 회의에서 내가 <한국의 통번역 시장>을 소개한 것도 바로 이 교실이었고, 총회 기념 학술 대회에서 <한국의 TV 통역>이란 주제 발표를 한 것도 이 교실이었다. 특히 발표 때는 1983년 6월 같이 졸업한 에지트 통역부 학장 Clare Donovan이 좌장을 맡아 나를 소개해 주었다.
22년만에 한국 대표 자격으로 처음으로 참석한 CIUTI 총회 장소가 이 교실이었고, 그 기념으로 열린 학술대회의 워크샵 4개 중 내가 주제발표를 한 통역관련 워크샵 장소가 또 이 교실이었고, 그 좌장이 나와 동기생이라는 사실이 꼭 우연 같지는 않았다.
현장에서 이 설명을 들은 역시 에지트 번역반 졸업생인 이화여대 통대 최미경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종의 숙명(fatality)>이라고 해석했다. 과연 그런 숙명이란 것이 있을까? 22년 만에 들어가 본 제7 강의실은 조금 작아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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