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여성 통역사의 저승사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05-22 05:57 조회379회 댓글2건관련링크
본문
기고: 트럼프는 여성 통역사의 저승사자?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곽중철
약 한 달 전에 일어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통역사 관련 사건과 그 배경에 대한 각종 외신과 유튜브 화면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2025년 4월 17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멜로니 총리가 미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회담 중 트럼프는 멜로니에게 나토(NATO),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을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멜로니는 이에 대해 모국어인 이태리어로 응답했는데 문제는 멜로니의 공식 통역사인 발렌티나 마이올리니-로트바허(Valentina Maiolini-Rothbacher)가 이 응답에 대한 영어통역을 제대로 못하면서 발생했다.
4-50대로 보이는 여성인 마이올리니 통역사는 긴장한 듯 보였고, 여러 차례 말을 멈추며 메모를 참조하느라 시간을 끌었다. 이 과정에서 회담장 분위기가 어색해 졌고, 트럼프도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결국 멜로니 총리가 “내가 하겠다”고 직접 영어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상황을 수습했다. 총리가 통역사를 “구조”한 것이다. 이후 통역사는 공식 사과 성명을 발표하며 "큰 실책이었다"며 책임을 인정했다. 노련한 통역사라면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곤경을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어딘지 기시감(데쟈 뷰)이 느껴진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1호 통역사’로 투입된 여성 신혜영의 경우다. 평양외국어대 영어학부 졸업 후 외국어대 동시통역연구소, 외무성 번역국을 거쳐 국제부로 옮겨 근무해 왔으며, 이전까지는 김주성 통역사를 대체해 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노이 회담 도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신혜영 씨의 통역 내용을 몇 차례 이해하지 못하자, 미국 측 통역관 이연향 국무부 통역국장이 개입해 “대통령님, 이것은 이런 말입니다”라며 수정하고 보충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과정이 외부에 포착되면서 “통역 실수가 회담 결렬의 원인 중 하나”라는 관측이 제기되었다. 4개월 후인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열린 김정은·트럼프 회동에서는 신혜영 씨 대신 안경을 낀 남성 통역사가 배석하는 모습이 관측되었던 것이다.
두 사건에 차이가 있다면 세계최고의 권부인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양국 최고 지도자들이 마주한 채 주요 외신 기자들과 카메라가 민첩하게 움직이는 분위기는 그렇지 않아도 긴장감을 자아낸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불과 두 달 전인 2월, 같은 장소인 백악관 집무실에서 같은 미국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통역사를 대동하지 않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격한 영어 언쟁 끝에 회담이 결렬된 것을 이탈리아 측 통역사도 익히 알고 있었으리라.
이런 배경과 외교적 맥락으로 이 사건은 단순한 통역 실수 이상의 문제로 보인다. 왜냐하면 2월 당시 트럼프와 부통령 밴스는 "미국의 지원에 감사하지 않는다"며 젤렌스키를 질책했고, 예정되었던 공동 기자회견도 취소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멜로니는 유럽 내 대표적인 중재자 역할을 맡아, 미국과 유럽,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이의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멜로니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겁먹은 통역사 대신 직접 영어로 통역하면서 위기를 기민하게 수습했고, 이는 그녀의 강한 외교적 감각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멜로니는 트럼프의 반(反) 나토적 기조와 유럽의 집단 안보 체제를 동시에 고려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다. 이 사건은 한 통역사의 실수로 인해 드러난 국제 외교의 민감성과, 지도자 개인의 순발력 및 메시지 관리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로 결론지을 수 있다.
한가지, 이번에도 외교의전을 무시하고 상대 정상과 통역사를 경시하며 윽박지르는 트럼프의 안하무인적 행동과 어법에 대한 각국 지도자와 통역사, 특히 여성통역사들의 각별한 대비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댓글목록
곽중철님의 댓글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트럼프는 통역사가 있어도 말썽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곽중철
약 한 달 전에 일어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통역사 관련 사건과 그 배경에 대한 각종 외신과 유튜브 화면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2025년 4월 17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멜로니 총리가 미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회담 중 트럼프는 멜로니에게 나토(NATO),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을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멜로나는 이에 대해 모국어인 이태리어로 응답했는데 문제는 멜로니의 공식 통역사인 발렌티나 마이올리니-로트바허(Valentina Maiolini-Rothbacher)가 이 응답에 대한 영어통역을 제대로 못하면서 발생했다.
4-50대로 보이는 여성인 마이올리니 통역사는 긴장한 듯 보였고, 여러 차례 말을 멈추며 메모를 참조하느라 시간을 끌었다. 이 과정에서 회담장 분위기가 어색 해졌고, 트럼프도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결국 멜로니 총리가 “내가 하겠다”고 직접 영어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상황을 수습했다. 총리가 통역사를 “구조”한 것이다. 이후 통역사는 공식 사과 성명을 발표하며 "큰 실책이었다"며 책임을 인정했다. 노련한 통역사라면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한 곤경을 경험한 것이다.
세계최고의 권부인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양국 최고 지도자들이 마주한 채 주요 외신 기자들과 카메라가 민첩하게 움직이는 분위기는 그렇지 않아도 긴장감을 자아낸다. 더군다나 상대는 불과 두 달 전인 2월, 같은 장소인 백악관 집무실에서 같은 미국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통역사를 대동하지 않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격한 영어 언쟁 끝에 회담이 결렬된 것을 통역사도 익히 알고 있었으리라.
이런 배경과 외교적 맥락으로 이 사건은 단순한 통역 실수 이상의 문제로 보인다. 왜냐하면 2월 당시 트럼프와 부통령 밴스는 "미국의 지원에 감사하지 않는다"며 젤렌스키를 질책했고, 예정되었던 공동 기자회견도 취소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멜로니는 유럽 내 대표적인 중재자 역할을 맡아, 미국과 유럽,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이의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멜로니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겁먹은 통역사 대신 직접 영어로 통역하면서 위기를 기민하게 수습했고, 이는 그녀의 강한 외교적 감각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멜로니는 트럼프의 반(反) 나토적 기조와 유럽의 집단 안보 체제를 동시에 고려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다. 이 사건은 한 통역사의 실수로 인해 드러난 국제 외교의 민감성과, 지도자 개인의 순발력 및 메시지 관리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로 결론지을 수 있다.
한가지, 이번에도 외교의전을 무시하고 상대 정상과 통역사를 경시하며 윽박지르는 트럼프의 안하무인적 행동과 어법에 대한 각국 지도자와 통역사들의 각별한 대비가 요구된다고 하겠다.